책소개
≪이즈미시키부 일기≫(이하, ≪일기≫라 약칭)는 레이제이(冷泉) 천황의 넷째 아들인 아쓰미치(敦道) 황자와의 사랑이 이루어지기까지 십여 개월에 걸친 미묘한 마음의 동요를 기록한 사랑의 수기다. ≪청령 일기≫가 미치쓰나 어머니의 반생을 기록한 것이라면, ≪일기≫는 아쓰미치 황자와의 사랑의 한 토막을 기록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일기≫가 아닌 ≪이즈미시키부 모노가타리(和泉式部物語)≫라는 제목으로 된 필사본도 있으며, 일기 작품 속에서 이즈미시키부가 자기 자신을 ‘여자’라는 제삼인칭으로 칭하고 있어 소설적 요소를 가미한 점이 특징이다.
≪일기≫는 이즈미시키부와 황자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건이나 그들의 심경을 묘사하는 평서문과, 두 사람이 나눈 서간문 – 서간문에는 주로 와카가 실려 있는데, 경우에 따라서는 와카와 함께 짧은 문장이 곁들여지기도 한다 – 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러한 구성 속에서, ≪일기≫는 145수의 와카가 중심축이 되어 이야기를 전개하는 독특한 서술 방식을 취하고 있다. 작품 내에 삽입된 와카의 빈도는 동시대의 다른 일기 작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 일기 문학이라기보다 노래가 중심이 된 이야기집인 우타모노가타리(歌物語)와 같은 성격도 엿보이는 작품이다.
200자평
헤이안시대, 그 누구보다도 열정적으로 사랑하고 열정적으로 살았던 이즈미시키부. 이 일기는 사랑했던 이의 동생인 아쓰미치 황자를 처음 만나 사랑하는 사이가 되기까지의 일화를 담았다. 빼어난 145수의 와카는 이 작품의 백미다.
지은이
이즈미시키부의 출생 연도는 동시대의 다른 여성 작가와 마찬가지로 확실한 자료가 없다. 따라서 그녀를 둘러싼 육친, 또는 연인 등과 연령 차이를 고려해 추정할 수밖에 없는데, 대략 978년 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부친 오에노 마사무네(大江雅致)와 다이라노 야스히라(平保衡)의 딸인 모친 사이에서 태어났다. ‘이즈미시키부’라는 이름은 부친의 관직명인 ‘시키부(式部)’와, 첫 남편인 다치바나노 미치사다(橘道貞)의 부임지였던 이즈미(和泉) 지방의 지명에서 비롯했다고 전한다. 995년, 이즈미시키부는 18세에 다치바나노 미치사다(橘道貞)와 결혼한 것으로 추정된다. 결혼 이듬해에 미치사다와의 사이에서 딸 고시키부(小式部)를 출산한다. 미치사다의 이즈미 지방관 재임 기간은 999년부터 1003년까지로 알려져 있다. 다메타카 황자가 이즈미시키부 처소를 찾았다고 한다면 그 기간은 1000년부터 그 이듬해인 1001년 9월까지로 고작 1년 남짓인 것으로 추정된다. 미치사다는 이즈미시키부가 아닌 다른 처자를 동반해 새로운 임지인 무쓰 지방관 생활을 시작했는데, 애당초 두 사람이 결별하게 된 원인은 미치사다가 새로운 부인을 만들었기 때문이며, 이에 이즈미시키부도 아쓰미치 황자와 사랑에 빠지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즈미시키부 생애에서 가장 농밀한 시기는 아쓰미치 황자와 함께한 때였을 것이다. 황자는 1007년 10월 2일 사망하므로, 1003년 4월 황자와의 관계가 시작된 이후 4년 정도의 짧은 기간이다. 이즈미시키부는 황자의 사십구재를 맞이해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만가를 읊는다. 아쓰미치 황자가 사망한 지 1년 반 정도 지난 1009년 봄, 이즈미시키부는 이치조(一條) 천황의 중궁 쇼시(彰子: 후지와라노 미치나가의 딸)를 모시는 여관으로 출사한다. 궁정에서 여관으로 지내는 동안 미치나가의 가신이었던 후지와라노 야스마사(藤原保昌)와 만나게 되고, 이윽고 결혼에 이른다. 결혼한 시기는 확실하지 않지만, 대략 1009년에서 1011년 사이로 추정된다. 야스마사는 야마토(大和) 지방 지방관을 거쳐 1020년에는 단고(丹後) 지방의 지방관으로 임명되었고, 이때 이즈미시키부는 남편을 따라 단고 지방으로 내려간 것으로 전해진다. 1027년 9월, 야마토 지방의 수령으로 가 있던 남편 후지와라노 야스마사를 대신해 황태후(후지와라노 미치나가의 딸)의 사십구재에 참석해 옥으로 만든 장신구와 와카를 지어 올렸다는 기록(≪영화 모노가타리≫)이 그녀에 관한 마지막 기록이다. 당시 그녀의 나이 50세 무렵이다. 이후 그녀의 행적은 묘연한데, 58세경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옮긴이
노선숙은 한국외국어대학교 일본어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이즈미시키부 일기의 심정 표현>에 관한 연구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일본 쓰쿠바 대학 대학원 문예·언어연구과에서 <이즈미시키부 연구>로 석사 학위를, <이즈미시키부 가집 연구>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98년부터 부산대학교 일어일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일본의 전통적인 시가 표현의 유형과 통사적 고찰을 통해 시어의 생성과 변용, 그리고 그 의미에 관한 연구에 주력하고 있다. 저서에 ≪에로티시즘으로 읽는 일본 문화≫(공저, 2013), 옮긴 책에 ≪마음에 핀 꽃 – 일본 고전문학에서 사랑을 읽다≫(역서, 2013) 등이 있다.
차례
1003년 4월
1. 4월 10일이 지난 무렵
2. 황자님과 처음으로 사랑을 나눈 밤
3. 주춤거리는 황자님
5월
4. 4월에서 5월로
5. 헛걸음이 되어 버린 황자님의 방문
6. 울적한 장맛비
7. 5월 5일경
6월
8. 달밤, 황자님과 한 우차를 타고 외박을 나감
9. 의혹을 품는 황자님
10. 황자님의 방문
11. 여자를 둘러싼 터무니없는 추문
7월
12. 7월
8월
13. 8월, 이시야마사(石山寺)로 향하는 여자
9월
14. 9월 20일이 지난 무렵
15. 감회를 적은 글
16. 9월 말, 옛 연인에게 보낼 이별가를 대신 지어 달라는 황자님
10월
17. 10월, 사랑의 팔베개
18. 자택으로 들어올 것을 제안하는 황자님
19. 편지를 전달하는 동자
20. 대낮에 찾아온 황자님
21. 가을비와 단풍
22. 우차 안에서 뜨거운 사랑을 나눈 하룻밤
23. 황자님 저택으로 들어가기로 결심
24. 황자님 저택으로 들어가기 전까지의 기간
25. 정이 가득 담긴 화답가
11월
26. 11월, 황자님 저택으로 들어가기 직전
27. 마음의 위안을 주는 화답가
12월
28. 12월 18일
1004년 1월
29. 새해 정월
30. 종국
해설
지은이에 대해
지은이 연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한동안 장맛비가 이어져 견딜 수 없이 무료한 요 며칠 사이, 잔뜩 구름 낀 날이 계속되는 장마철의 음울함에, 여자는 ‘앞으로 황자님과의 관계는 어찌 되는 걸까’라는 끝도 없는 수심에 잠겨 있었다. ‘구애하는 남자들은 많지만, 지금의 나에게 그들은 아무런 의미도 없거늘, 세간에서는 그런 나를 곱게 보지 않고 이런저런 말들을 하고 있는 듯하다. 이것도 다 내가 목숨을 부지하고 있기 때문이겠지. 어디라도 좋으니 숨어 버리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며 힘든 나날을 보냈다. 그러던 참에 황자님으로부터 편지가 당도했다.